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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내가 겪은 외교부 (3) :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교육과정 입과

by 봄여름가을 2023. 10. 30.

학생, 취업준비생 등의 입장에서 가장 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가, 목표로 하는 무언가가 되는 데에만 집중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장 중요한 건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목표가 맞을까? '외교관이 되는 것'이 목표이고 그 목표를 이루었으면 인생은 끝나는 걸까? 빠르면 20대 초반, 늦어도 대개 30대 초반에 시험에 합격해서 외교부에 입부하게 되면 남은 30년의 근무와 은퇴 이후의 삶은 공백으로 놔두어도 된다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나도 시험에 합격한 뒤에야 이런 질문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시험을 준비하던 당시의 나는 '이게 뭐든지간에 일단 해보고 나서 결정하자'는 태도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진지한 고민을 피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외교관후보자시험을 준비하게 된 상세한 배경은 이 시리즈의 끝에서 다뤄 보려 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태도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봤다고 해서, 안다고 해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전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가? 결국 외부 환경은 환경일 뿐이고, 중요한 결단은 내 안에서 내려야 한다.

 

외교부에 대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교부에서 일해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외교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들으면', 아주 익사이팅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여기까지 읽었을 테고, 바로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시험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합격에 초점에 맞추어지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필터링해서 듣게 된다. 오히려 공정한 시각으로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합격증을 손에 쥐고 나서의 이야기다.

 

사진: Unsplash 의 Johannes Plenio

 

다만 정말 외교부에 입부해서 직접 부딪혀보기까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국립외교원에서의 연수가 1월부터 12월까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소위 '외교관후보자' 제도로 바뀐지 몇년이 안 된 시점, 내가 합격한 그때는 아직 강제로 일정 인원을 탈락시켜야만 했다(기사 참고). 나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채로 시험을 준비했고, 탈락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그저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즐겁고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선물이었다. 확정된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다. 실패는 서서히 받아들여가면 되지만 불확실성은 사람의 마음을 조여든다. 

 

12월말, 외교원 교육과정 입과를 며칠 앞둔 때였다. 이미 스터디를 통해 얼굴이 낯익은, 하지만 아직 이름까지 다 기억하지는 못한 장래의 동기들과 MT를 갔다. 나는 무슨 MT냐 싶으면서도 어차피 1년(사실은 수십 년)은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할 사람들이기에 기꺼이 참석했다. 사실 그때 우리에게는 친해져야 한다는 당위,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탈락제도의 존재 때문이었다. 1년 동안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해야만 한다는 중압감을 안고 경쟁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 가능한 한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 같이 착한 사람들이었고 서로에게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MT는 상당히 편하고 즐거웠다. 아마 그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외무공무원법이 개정되어서 더 이상 의무적으로 탈락자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이었다. 2017년 12월 30일, 연말 국회에서 통과시켰을 수많은 법률 제개정안들 중에서는 사소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와 내 동기들에게는 아주 큰 소식이었다. 다행히도 부칙을 통해 법 시행 전에 선발된 외교관후보자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게 규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새로운 제도의 첫 수혜자가 되는 것이었다.

 

외무공무원법
[시행 2017. 7. 26] [법률 제14839호, 2017. 7. 26, 타법개정]
외무공무원법
[시행 2017. 12. 30] [법률 제15334호, 2017. 12. 30, 일부개정]
제10조(신규채용) ① 외무공무원은 공개경쟁 채용시험으로 신규채용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무등급의 외무공무원은 공개경쟁 시험에 의하여 선발된 사람(이하 “외교관후보자”라 한다)으로서 「국립외교원법」 제6조제1항에 따른 정규과정을 마친 사람 중에서 채용한다.
제10조(신규채용) ① 외무공무원은 공개경쟁 채용시험으로 신규채용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무등급의 외무공무원은 공개경쟁 시험에 의하여 선발된 사람(이하 “외교관후보자”라 한다)으로서 「국립외교원법」 제6조제1항에 따른 정규과정을 마치고 교육내용에 대한 성취도, 공직수행 자세 및 가치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정규과정 종합교육성적이 외교부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상인 사람을 채용한다.
② 외교관후보자 수는 제1항 단서에 따라 채용할 인원의 150퍼센트 범위 내에서 외교부장관이 인사혁신처장과 협의하여 정한다.
② 외교관후보자 수는 제1항 단서에 따라 채용할 인원수로 하며, 외교부장관이 인사혁신처장과 협의하여 정한다.
③ ∼ ⑥ (생 략)
③ ∼ ⑥ (현행과 같음)

 

나는 늘 그렇듯이 무엇이 오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였기에 당장 크게 기쁘지는 않았는데, 교육이 끝나고 몇 년 간 근무까지 해 본 이 시점에 돌이켜볼 때 정말 감사하고 기적적인 일이었다. 몇 년 간 고통받았던 외교관후보자들과, 뼈를 깎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락해야만 했던 이들에게 빚진 마음이다.

 

그리고 2018년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 정말 너무 추웠다는 것밖엔 기억나지 않는 현충원 참배를 마치고 교육과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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