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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내가 겪은 외교부 (1) : 들어가며 - 직장으로서 외교부, 직업으로서 외교관

by 봄여름가을 2023. 10. 3.

사진: Unsplash 의 Brendan Church

 

솔직히 조심스럽다. 두려움은 원래 내 DNA에 새겨진 것일 수도 있고, 외교부에서 일하던 몇 년 간 체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내 신원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꼴이 되어서 두렵지만, 이 블로그는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만들었으니 견딜 만 하다. 또 다른 이유는 조직에 누가 될까봐, 라는 생각인데, 이 부분이야말로 외교부에서 지내면서 배운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내 경력에는 외교부가 남아있고, 앞으로도 작은 글씨로나마 포함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미 퇴사해버린 내가 몇 줄 글을 쓴다고 해서 외교부의 이미지를 더럽힐 힘은 없다. 그럼 왜 두렵나? 나는 그저 '잘 모르는 애'가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다닌다는 인상을 주기 싫은 것 같다.

 

특정 회사에 대해 이렇게 실명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방금 생각해 보니 보통 회사들은 다니는 동안에는 당연히 하기 어렵고 다니고 나서는 크게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퇴사해서도 괜히 원래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일은 피하는 게 좋고, 법적 분쟁의 우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직장 이야기가 새롭지 않고 재미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일의 성격이 특별해야 얼마나 특별하겠나. 대한민국 사람들, 전세계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직장에서 일하지만 직장 내 동학은 사람이 모인 조직인 이상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특별히 자랑하거나/비판할 만한 거리가 많지 않을 수 있다. 직장에 뿌리내린 문화가 비교적 옅은 색이거나 쉽게 변화하므로 기록으로 남겨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외교부에 대해 내가 굳이 적어보고 싶은 것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능성들과는 충분히 다른 점이 있어서인데, 우선 대중에게는 비교적 잘 안 알려진 조직이라는 게 크다. 살다 보면 외교부와의 접점은 적지 않지만 외교관 개인들이나 외교부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기는 어렵다. 사실 퇴직한 대사들 중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회고록도 많이 써서 찾아보자면 얼마든지 자료는 있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면 알 수가 없다. 또 그 분들은 이미 80년대에 공직 생활을 시작한 분들이다. 우리나라가 삼저 호황이니 올림픽이니 하던 시절에 외교관이 되었던 분들이, 2023년 이미 BTS보유국의 국민으로 일평생을 산 젊은 이들과 비교한다면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분들이 뭘 모른다는 게 아니라, 외교관으로서 경험과 관점을 형성해 온 외부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문제는 외교관에 대한 인식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외교관은 소위 팬시한 직업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여러 의미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외교관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국민들이 전세계 어디든 쉽게 여행다니고, 어디에서든 정착해서 살고, 일하고, 공부하는 시대에 외교관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들이 누린다는 특권은 대체 뭘까? 내가 항해사나 비행기 조종사, 건축가 등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많은 이들이 외교부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갑자기 잘난 척이냐 싶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고, 또 지금도 외교부에 입사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이를 방증한다고 본다. 나 자신이나 내 동료들은 물론, 지금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도 외교부를 아주 잘 알고 준비하는 건 아니다. 그래 원래 회사를 누가 다 알고 들어가냐 하는 일침을 날리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외교관으로서의 생활이 가진 특수한 면모를 생각할 때, 그리고 시험 준비에 적어도 몇 년은 쏟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너무 모른 채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게 아닐까. 군인, 경찰, 소방관이 힘든 직업이라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살면서 한두 번 씩은 만나거나 들어서라도 그들의 삶과 업무에 대해 알 기회가 있지만, 외교관의 삶과 업무에 대해서 20대-30대의 시각으로 해석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기자처럼 인턴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물론 올해에는 청년인턴 제도로 다수가 근무 중이다), 공무원 전입자나 민간경력채용, 계약직, 공무직 등 경로로라도 근무해 볼 기회가 다른 기관에 비해서는 많지 않은 편이니 직접 체험해보기도 쉽지 않다. 

 

사진: Unsplash 의 Omid Armin

 

물론, 와 보니 생각보다 힘든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좋은 것도 분명 있다. 그렇다면 구직자가 상상하는 좋은 점이 아니라 진짜로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재차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외교부가 그냥 기업 입사하듯이 공채 시즌에 지원해서 들어가는 류의 직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공무원 시험은 붙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는데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구제가 없다. 시험의 성격상 다른 채용과 병행하기도 어렵고, 시험에 떨어지고 남은 뒤의 지식을 어딘가에 활용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외교부에 오고자 하는 사람들이면 대체로 능력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진로를 선택했어도 무난하게 헤쳐나갔을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을 텐데, 적어도 비교는 제대로 하고 고르는 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이다.

 

결론적으로는 외교부에서 일하고 외교관으로 사는 것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갭이 클 수도 있고, 그 갭이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 이 시리즈를 쓰게 된 배경이라 하겠다. 예상독자는 20대에서 30대, 외교부에서 일하는 데에 관심있는 사회초년생과 학생들이다. 그렇다면 이 시리즈를 읽을 때 주의사항을 소개해 본다.

 

  • 이 글을 쓰는 사람은 퇴사자다. 퇴사자의 시각으로 회고하여 쓰기 때문에 편향이 있다. 특히, 회사를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퇴사자로서 나는 일종의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 모든 것은 변한다. 이 글에 나온 것이 바뀌었을 수 있다.
  • 사람마다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꼭 맞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외교부에서 모든 재외공관을 거칠 수 없고 모든 실국을 근무할 수 없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같은 곳에서의 경험도 다르게 쌓인다. 즉 외교부를 바라보는 수많은 렌즈 중 하나라는 점을 염두에 주면 좋겠다. 이런 렌즈 여러 개를 종합하여 보다 정확한 상을 얻기를 바란다.
  • 뻔한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생각과 내 관찰 위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려고 한다. 다만 객관적인 사실인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구분하여 밝혀서 적겠다. 그리고 근무한 조직과 담당한 업무에 대해서는 상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 직무상 알게 된 비밀에 대해서는 엄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는 지금 제도가 어떤데, 우리 외교가 발전하려면 ~하게 해야 한다 식의 주장은 피하려고 한다. 그런 건 이미 수많은 전직 외교관 회고록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외교 전문가가 아니므로 외교 정책이나 국제 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
  • 회고록들을 먼저 읽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평생 근무한 분들이 가진 경험의 깊이는 무시할 수 없다. 외교부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다.
  • 읽어 보지는 않았고, 저자를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지만, 글을 쓰는 이 시점에 가장 눈에 띄는 회고록은 신봉길 전 대사의 어쩌다 외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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