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5급 외교관의 채용과 관련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큰 틀에서는 변화하지 않은 게 있다면 1, 2, 3차로 이루어진 선발절차다. 채용에 대해서는 이미 온라인에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그래도 3차 면접부터는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수험생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2차 시험까지는 외무공무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지식을 채워넣는 공부가 주를 이루고, 비로소 면접을 준비하면서부터 비교적 구체적인 마음의 자세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3차 면접의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와서 상세히 복기한들 큰 의미가 없겠다.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지만 세부진행절차나 방식, 내지 면접관들이 면접에 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해마다, 정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금 우연히 검색해보았다가 최근 합격자의 블로그가 나왔는데, 최근 동향을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이 블로그의 주인장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인 듯하여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실전적인 시험 대비 자료 및 후기가 있으니 진지한 수험생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내가 시험을 보던 당시에는 그룹토의와 개인발표 정도가 있었던 것 같고, 영어로는 별도 면접을 진행하는 대신 그룹토의 때 영어 질문을 하나씩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정권의 방향성에 따라, 시험 부담을 조금 줄여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고 있던 시기였다.
2차 시험 발표일 당일이던가, 그 다음 날이던가,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외교원 3차 면접 스터디를 위한 공지문이 올라왔다. 이는 외교관후보자 선발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행정사무관이나 기술사무관 5급 공채 채용에 있어서도 면접 스터디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곤 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외교관후보자는 규모가 꽤 크기는 하지만 일종의 소수직렬과 같다는 점이다.
내가 들어간 해에 최종 선발인원이 40명 초중반대였는데, 이미 몇 년이 지나 기억이 흐릿하지만 1.3배수 정도가 면접을 봤던 것 같다. 그러니까 60여 명 정도가 2차 합격자인 셈인데, 이 정도 인원이 되면 대략적으로 면접 전에 다른 합격자들과 적어도 한 번 이상 스터디를 같이 해 보는 게 가능해진다. 시험장에 가서 어떤 응시번호를 부여받고 어느 조에 속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안면이 있는 상대라는 것이다. 또, 지금은 아닌 걸로 알지만 그때만 해도 외교관후보자 시험은 시험 스케줄이 조금 달라서 전반적으로 5급공채에 비해 일찍 진행되었기에 애초에 단독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2차 합격자 전원이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합격자가 많은 대학에서야 나처럼 혼자 수험 생활을 했어도 면접 스터디의 존재를 알게 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합격자가 혼자거나 매우 드문 경우, 혹은 지역/전문전형과 같이 다른 이력을 가진 경우에는 어떻게 알음알이로 알고 오게 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수험생활을 하다보면 대개 몇 명쯤은 알게 되기 마련이라 합격할 정도의 구력이 있었다면 지인이 알려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 스터디 모임을 가졌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이 중에서 누군가는 탈락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합격하게 될 것이었다. 고시를 여러 해 동안 준비하거나, 취업 준비를 해 본 사람들에게는 흔한 경험이지만 혼자 공부했고 취준 경험도 없던 내게는 낯선 느낌이었다. 사실 3차 합격은 큰 이변이 없는 이상 2차 성적대로 정해진다고들 하는데 이 시점에는 내가 몇등인지 가늠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미 결과가 정해진 채로 면접을 준비하는 것과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탈락한다면 꽤나 큰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물론 소위 '면탈자'들 중 상당수는 그 다음 해 시험에서 최종 합격을 하게 되지만 그건 무슨 특혜를 보장해줘서가 아니라(1차 시험은 면제해준다) 이미 2차 시험에 합격할 정도 실력이면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이기 때문이다.
아주 랜덤하게, 대충 6명씩 조를 짜게 되었는데, 아주 놀랍게도 내가 속한 조에 있는 6명은 전부 출신 대학이 달랐다. 당시 최종 선발인원 통계를 보면 절반 정도가 서울대였고,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가 다수를 이루고 있었기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이야 3차 면접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이미 지나가버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처럼 정보가 별로 없던 입장에서 출신 대학이 다른 사람들과 조를 이루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재미있고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조 분위기가 스터디 기간 내내 좋았고, 이후 외교부 생활을 하면서도 큰 의지가 되었다.
2차 발표와 3차 시험 사이에는 아마도 한달 반 정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7-8월의 쨍한 여름이었던 것이 지금도 인상깊게 남아있다. 스터디는 한 조씩 돌아가면서 주관하게 되는데, 주관하는 조는 스터디할 장소를 물색하고 스터디 문제를 만들어야 했다. 스터디 주제는 제일 처음에 다 정해놓은 상태에서 그 주제에 맞는 문제를 만드는 식이었다. 문제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최근 1년 정도의 주요 정책 현안을 바탕으로 준비해야 했다. 이런 점은 기본적으로 5급 공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주제가 외교이다보니 잘못하다보면 붕 뜬 이야기만 하게 될 우려가 있는데, 가능한 한 정책 현장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따라가기 위해 외교부에서 나온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했던 것 같다. 문제를 풀다보면 정말로 답이 없는 경우도 많은데, 그게 정부에서 하는 일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주권을 갖고 통치하는 국내에서조차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이 얽힌 사안을 해결하는 데에는 아주 큰 어려움이 있는데 국가간 사안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데에 품이 많이 들어간 부분은 위에서 말한 그룹토의나 개인발표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지만 스터디를 해 보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나와 같이 준비하던 그 모든 2차 합격자들의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2차 시험 성적에 따라 결정이 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면접에 임하는 부담감이 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남들만큼만 하자, 는 것이 대체로 준비하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태도였다. 물론 더 잘하고 싶어서 혼자서 몸부림 친 것도 많이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남들만큼만 하면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인성 면접에 있었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인성면접도 있었고 이 또한 구조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아무 질문이나 던지는 게 아니라 사전에 질문지를 받고 간략히 적어간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 및 질의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인성 면접 문제에는 어줍잖은 지식으로는 쉬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사회초년생이 답하기에는 까다로운 문제들이 많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직장 생활을 여러 해 한 시점에 와서는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답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나이브한 수험생에게는 진땀 빼게하는 질문들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우리가 흔히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셋을 장착하면 비교적 잘 대답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이를테면 상사의 지시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고 하자. 사실 회사에서 일해보면 그냥 답이 없고, 현저하게 비합리적이어서 수행이 불가능한 게 아닌 이상 일단은 하라는 대로 준비한 뒤에 넌지시 문제가 되는 지점을 짚어주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내 말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전례가 있으면 거기서 거의 논의를 종결시킬 수도 있다. 분명한 근거를 들고 간 실무자에게 반대 지시를 할 만한 상사도 별로 없다. 만약 (운이 좋게도) 편하게 소통이 되는 타입의 상사라면 평소의 긴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아예 초장부터 오픈해서 논의해 볼 수 있겠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우리 조직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기반해서 사고해 보면 (역시나 상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 공감할 만한 지점을 찾아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대단히 추상적이지만 실제로 조직에서 일을 하다보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경험해보았을 만한 케이스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입장에서 막연히 사고실험으로 답해나가는 건 아무래도 자신없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외교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 상황들에 대해서도 수험생들이 제대로 답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민간인의 입장에서만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객관성, 공정성, 규범합치성 등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선별적으로 특정 인사나 단체와만 친하게 지낸다면 특혜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고,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편의를 봐준다면 그야말로 감사 대상이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선의의의 마음이 지나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 좋은 대안만을 추구하다보면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릴 수 있다. 이건 최근에 나오는 '적극행정'하고 상충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누군가에게 조력을 제공했을 때, 그건 컴퓨터에서 말하는 undefined behavior의 영역으로 간다고 본다. 그 조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고 운이 좋으면 아주 훌륭한 행동이 될 수 있지만, 항상 그러리라고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한달 반 정도 되는 시간은 이런 마인드셋을 장착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고, 뭔가 열심히 준비를 하고 또 열심히 놀면서 여름이 그렇게 지나갔다. 큰 사명감을 가지고 시험 준비를 시작했던 게 아니었던 만큼 내게는 어찌 보면 다소 기술적인 무언가를 익히는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다만 인성면접을 준비하면서 왜 외교관이 되고 싶은지를 적절히 만들어내야 했는데, 다른 응시자들과 이야기해봐도 모두들 뻔한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뻔한 데에 바로 정답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생각나는 가장 빈번한 대답들은 국익(정무적, 경제적 등)을 위해 봉사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배워나가고 싶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의 교류에 흥미가 있다, 따위였다. 물론 만들어냈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 이유나 지어내서 붙였다는 게 아니고, 마음 속 어딘가에 쌓여있던 다양한 생각들의 방향을 정리해주었다고 보면 되겠다.
면접은 과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되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은 업체에서 면접용 양복도 빌려 입었고, 넥타이 메는 법을 잘 몰라 진땀을 뺐다. 나는 정말 무난하게 행동했고 면접은 너무나 무난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가을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과천은 내게 여러 모로 익숙한 도시였다. 나는 과천 시내로 발걸음을 옮겨 잘 알던 서점에 갔다. 그때 샀던 책이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순간에 놀랍도록 어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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