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잊어버렸던 과거의 내 모습이 담겨 있는 블로그들이 있다. 글들을 다 옮겨오고 폐쇄해버릴까 하다가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인 데다가 어쩐지 훼손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차마 손댈 수가 없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아주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당위를 느낀다. 지금의 내가 회상하는 과거의 내 모습이 아니라, 당시에 내가 정말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사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바로 띄엄띄엄 썼다는 점이다. 생각은 많으면서도 제대로 글로 정리하고 남에게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 단지 쓰는 게 귀찮기 때문인지, 어떤 이유로든 글은 수 주, 수 개월, 수 년을 뛰어넘으면서 드문드문 올라와 있었다. 그러면서도, 참 한결같다 싶은 한 20대의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제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만, 생각도 짧고 깊이도 부족해 보인다. 그건 괜찮다. 20대가 뭘 알아서 20대겠나. 문제는 고민의 부족이 아니라, 고민이 실제 세계와 충분히 닿지 못했다는 데 있다.
막연한 수백 킬로미터 너머의 목표만을 상상할 뿐, 그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이의 발바닥과 무릎과 허리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했다. 추상적으로 보면 세상의 만물은 무엇이든 제각기 아름답고 가치를 지니는 숭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구체적인 수준으로 내려오면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구체적인 매 순간을 뚫고 지나가지 않으면 추상적인 목표에 닿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렇게 하면 괜찮을까, 저렇게 하면 성공할까에만 집중했다. 딱 그 정도 수준의 질문이었고 딱 그 정도 수준의 답변이었다. 우문우답. 막연한 비관주의나 막연한 낙관주의 모두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막연한 비관주의는 시도조차 하기 전에 포기하게 만들고, 막연한 낙관주의는 허황된 꿈을 쫓게 만든다.
당시의 진로 고민에 대해 지금 돌이켜본다면, 지금의 시선에서 조언해 준다면 무엇을 하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한 장기 목표를 가져라, 같은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런 목표를 가지기 쉬운 타입의 인간은 아니라는 걸 지금의 나도 잘 알고 있다. 대신에 뭉뚱그려서 생각하지 말고 세분화해서 잘 따져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대충 보면 아름다워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흉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물론 그 흉한 모습 중 한 두 가지 때문에 지레 겁을 먹어도 안 되겠지만, 정말 중요한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스스로 확신은 갖기 어렵더라도 처음부터 포기하면 안 된다. 그 날 그 날 스스로의 노력을 믿고 밀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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