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심하게 아팠다가 이제야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첫 며칠은 아픈 와중에도 회사에는 꼬박꼬박 얼굴을 비출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더 나은 방법은 있었겠지만, 내가 처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도구상자에는 그런 방편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초반에는 두통, 오한과 고열이 번갈아가며 찾아왔기 때문에 감기약을 먹었다. 감기약을 먹으면 정신은 몽롱해지고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나와 세계의 물리적 경계는 분명한데, 정신적으로는 하나가 되어버리는 기분. 그렇게 된 와중에도 외부 자극에 대한 지각과 인지만큼은 지속된다. 아파서 누워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나누는 대화가 유독 크게 들린 경험이 있다면 잘 이해할 것이다. 나를 빼고 세상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누우면 인생에서 언제 그렇게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봤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침대에 머물렀다. 이따끔씩 눈을 뜨면 저녁이었고, 밤이었고, 새벽이었고 또 새벽이었다. 분명히 눈을 감고 잠에 들었는데 그 시간을 모두 살아낸 것처럼 피로가 가시질 않았다. 다시 출근해야 하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일단 쉬고 나면 몸은 잠시 움직일 준비가 되어서 출근길은 버텨낼 수 있다. 몸이 기억하는 길이기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출근하고나서부터 잉여적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점.
아프기 때문에 어차피 급한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없고, 정말 피할 수 없는 일만 겨우겨우 한 단어씩 꿰어내어 메일을 쓰고 나면 이미 몇 시간이 흘러 있었다. 병원에 잠시 들러 수액을 맞고 나서도 오랜 공복으로 인한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이후에 제대로 된(그래봐야 흰죽이지만)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두통이 지속되었다.
아프기 때문에 정확히는 내가 상대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상대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데, 세상이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다. 끝없이 공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멀어지는 영화적 연출이 심리적으로 재연된다.
길거리에서 죽을 수는 없기에 몸을 잘 조종해서 집까지 도착해야 했다. 단순히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게 아니라 병든 몸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과 같다. 왼쪽으로 한칸, 앞으로 세 칸, 그 앞의 구덩이를 피해서 옆으로 이동... 다행히도 내 말을 잘 듣는 캐릭터처럼 몸이 이동되는 상태였다. 몸도 빨리 가서 눕고 싶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긴 침묵의 시간. 평일에 병가를 내고 쉬어본 훌륭한 경험이(그런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잘 허용되지 않으니 말이다) 있다면, 그것도 이미 가장 아픈 시점에는 출근한 뒤에 몸이 50% 수준으로 돌아왔을 때에야 병가를 낼 수 있었다면, 왜인지 모를 불안감을 이해해 줄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마무리 못 지어서 큰일 날 것 같은 불안감. 하지만 진실로는, 나 없이도 세상이 너무나 잘 돌아갈 것이라는 더 큰 불안감. 거기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의 시간, 오직 나만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간에서 오는 고독감. 며칠을 홀로 방에 누워 앓다보니 방이 무섭게 느껴졌다. 분명히 집에서 쉬는 것인데도 징그럽고 답답하지만, 그렇다 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걸 원치도 않는다. 괴물 같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며 어른-괴물이 되어가듯 나는 공포 속에서 잠을 청했다. 긴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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