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하지 않기
일이 잘 되고 있을 때에는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지만, 어딘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되면 조급함의 파도가 밀어닥친다.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 상태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어찌 되었든 제일 위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끝내면 결국은 끝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쌓여있음의 양상이 뒤죽박죽이고, 대체 이 무더기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먼 옛날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들에게는 항상 길잡이가 되어 줄 별이라도 있었건만,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아가야만 하는 불확실성을 건너야 한다. 불확실함은 내가 저 건너편 땅에 닿기 전에 물과 식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조바심으로 이어지고, 조바심은 일단 갈 수 있는 방향으로 마구 전진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운이 좋으면 도착하겠지만 항상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조급함은 귀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땅에 닿고 싶으니까 안달이 나는 것이다. 그냥 대충 바다에 떠 있다가 표류되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라면 하나도 조급하지 않겠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걸려 있으니까, 한번 제대로 해 보고 싶으니까 욕심이 생기고 조바심이 나고 조급함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내면의 투영과는 무관하게 조급함은 오히려 일의 진행을 가로막기도 한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천천히 나아갈 수라도 있는데 여유가 없어지면 오히려 어떠한 선택도 내리지 못하는 일종의 교착상태에 빠진다. 잘 해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르니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려주기를 기다리는 자아(실행을 담당하는 자아)와, 일단 조금이라도 해 봐야 어디로 가야 잘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환경으로부터의 자극과 피드백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아(판단을 담당하는 자아)는 서로를 끝없이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 것도 오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자신의 임무를 잘 하려던 걸 포기하고 상대가 진행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잘’이다.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일단 시작이 된다. 1) 좋은 판단이 내려져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눈 앞에 놓인 길로 걸어가거나 2) 실행을 통한 정보를 기다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나 골라잡아야 한다. 말을 묘하게 써놓았지만 결국 둘은 같은 의미의 행동을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 불과하다. 이렇게 시작이 되고 나면 우리의 피드백 루프는 작동할 수 있다. 피드백 루프가 돌아가는 한, 더 이상 조급함은 사라진다. 나는 조금씩 정보를 확인하고 있고, 조금씩 성과를 내게 되니까, 막연함에서 오는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니 성과를 바라지 말고 불확실성 속으로 걸어들어가자.